10월 12일 방송콘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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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영혼의 연합이 돈독하게 되는 일은, 일상의 일이면서 또한 인생의 의무이다.
하나님은 일요일 아침에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찬양이나 재능 있는 교사들의 영감 어린 말들 가운데에서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상, 인생의 활동, 그리고 당신께서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곳에 계십니다. - 부르신 곳에서
오늘의 한줄 톡 - “날 웃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 내 영혼이 은총입어
story 1
완전 대박
최근에 자동차를 고치려고 단골 정비소를 들렀다.
때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데
정비소옆에 딸린 세차장에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아서 내심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박사장님, 비가 오니깐 세차 손님이 한명도 없네요
비가 오면 완전 공치는 날이네요."
그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비가 오면 저는 다음날을 생각합니다.
세차손님이 줄을 서거든요.
한마디로 완전 대박입니다."
순간 나는 인생의 커다란 지혜를 깨달았다.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생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나는 '비 때문에' 라고 걱정하며 쪽박생각을 했고,
그는 '비 덕분에' 라고 기뻐하며 대박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대박같은 생각은 늘 긍정을 몰고 오며
마음속 즐거움을 채우세요. - 주여 나의 맘을 받아주소서
story 2
영국 웨일즈에 하노버교회가 있습니다. 시골에 있는 교인 열 네댓 명의 자그마한 교회입니다. 한국 최초 선교사로 대동강변에서 순교당한 토마스목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입니다. 그의 부친께서 목회했던 곳이기도 한데 그 교회 뜰에 가족묘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목사의 묘는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고 칼로 친 조선 땅 어디에 아무렇게나 묻혔기 때문입니다. 하노버교회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은 예배당 한편에 걸려있는 빛바랜 그의 사진틀 하나뿐이었습니다.
토마스선교사는 런던선교회 소속이었으나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은 후 깊은 방황과 갈등 중에 그 단체를 탈퇴합니다. 사역지였던 중국을 떠나 조선을 향하는 상선을 타게 되는데 조선관군에 의해 그 배는 불타고 겨우 땅에 발을 딛자마자 그는 칼에 맞아 죽습니다. 27세의 꽃다운 삶을 바쳤지만 정작 영국교회 안에는 그의 순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학자는 토마스목사가 한국교회 부흥의 씨앗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죽으면서 전해 준 성경이 놀라운 일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서 그는 떨리는 손으로 군관인 박춘권에게 성경을 줍니다. 얼떨결에 받은 성경을 박춘권은 조카인 이영태에게 건네줍니다. 이영태는 그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나중에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레이놀즈선교사의 전도사가 되어 성경 전체를 번역할 때에 상당부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토마스목사가 죽기 전에 최치량이라는 어린이에게도 성경 세 권을 전달했는데, 당시에 금서인 성경을 받자 이 아이는 겁이 나서 평양 감영 경비인 박영식에게 갖다 줍니다. 성경을 수거하는 책임자이기도 한 박영식은 성경을 가져다가 집에 도배를 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신문으로 도배를 한 방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오래 전에 종이로 도배한 방은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으로 도배된 벽과 천장을 상상해 보세요. 멸시했던 성경말씀이 명물이 되었습니다. 디자인도 디자인이려니와 누워도 말씀, 앉아도 말씀이 가득합니다. 이 집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바로 박영식의 집이 평양 최초의 교회 널다리교회가 됩니다. 그 후 이름이 장대현교회로 바뀌게 되는데 이 교회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묘지 하나 제대로 없이, 고국의 교회에 이름 하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이 땅을 위해 던진 생명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 그사랑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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