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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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예배에 대한 기초적 이해
예배라는 말의 우리말 뜻은 “신을 신앙하고 숭배하면서 그 대상을 경배하는 행위 및 그 양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의미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 구약은 예배에 대한 대표적인 어휘로 “아바드(ד■■■■)”와 “샤하아(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 “봉사”, “자신을 엎드리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약에서는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를 대표적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존경의 표시로 “절하다” 혹은 “굽어 엎드리다”, “입맞추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 외에 “라트레이아(λατρεία)”와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ία)” 등을 사용한다. 영어에서 사용하는 “worship"은 앵글로색슨어인 ”weorthscipe"에서 나온 것으로 가치(worth)와 신분(ship)이라는 말의 뜻을 가진 합성어다. 이 말은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라는 뜻으로 이를 구체화시키면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란 뜻이 된다. 지글러(Franklin Segler)는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계시에 대한 인간들의 인격적인 신앙 안에서의 정성어린 응답”이라고 말했다.
예배자들은 다음의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첫째, 예배의 대상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이다. 셋째, 예배를 역동적으로 움직여가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하시고 생명력을 불러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의 기능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넷째,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신학적인 이해의 요구는 예배자들의 가족적인 개념의 설정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단순히 예배를 받으시는 존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배자의 사명은 예배드리는 무리들은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있으며, 그 일을 위하여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며, 예배란 생활 속에서 지속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2강 예배를 위한 교회
교회는 구약에서 ‘카할(ל■■■■)’이라는 단어로, 신약에서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는 단어로 나타난다. 그 외 ‘에다(ה■■■■)’라는 단어가 있다. 이 중 교회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는 ‘에클레시아’이다. 이 의미는 사도 시대에 와서 구체화 되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만의 신앙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교회의 기본 성격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모임이며, 유일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교회는 거룩한 속성을 가지며, 사도적인 전승을 계속해야 한다. 교회의 임무는 우선적으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일이다. 다음은 섬김을 사명으로 해야 하며, 나아가 코이노니아를 실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사명은 선교이다.
교회의 임무 중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예배이다. 그 이유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배 공동체로서 존속하고 계속적으로 발전해 가는 필요한 요소로는 1937년 에딘버러에서 개최되었던 신앙과 직제 연구를 위한 “제2차 모임”을 통해 분류된 바와 같이 첫째, 성만찬 중심의 예배, 둘째, 설교 중심의 예배, 셋째, 성령을 모시는 것을 예배의 구심점으로 여기는 교회이다.
윌리암스는 “예배의 핵심은 신앙”이라고 말했다. 신앙은 가장 기초적으로 볼 때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새롭고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다. 예배와 신앙은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갖는데, 예배 없는 신앙이란 자기 수양에 불과한 것이며, 신앙이 없는 예배란 아무 의미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크리스천은 거룩한 무리들로서 깊은 신앙의 소유자들이어야 하며, 그 신앙 때문에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이 땅 위에 존속되어야 한다.
제3강 예배의 역사적 발전
1. 구약시대
모세 이전시대, 즉 하나님의 창조 역사부터 모세의 부름 전까지는 가인과 아벨의 예배, 에녹과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예배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예배는 예언적이며, 제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는 유일신 사상의 예배, 하나님의 임재와 인격적인 응답, 일체의 형상을 남기지 않고, 절대적인 권위와 말씀을 따르는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모세 이후 시대에는 이방 종교로 인해 오염되었던 예배의 형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게 된다. 모세 시대에 제정된 성전 예배는 솔로몬의 성전 완성을 통해 극치를 이루었다. 솔로몬 시대에 예배에 중요한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첫째, 십계명이 담긴 법궤를 성전에 모심, 둘째, 진설병과 황금 등대를 비롯한 기구들로 성전을 화려하게 장식, 셋째, 찬송과 함께 수금, 나팔 같은 악기의 사용, 넷째, 예배의 참예자들이 십일조를 비롯하여 각종 제물을 드림이었다.
그 후 이스라엘의 타락 가운데 예전과 신앙이 허물어져 갔으며, 이에 대해 예언자들의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들이 요시야 왕과 예레미야, 에스겔의 개혁운동이다. 포로 후기에는 “회당 예배”를 갖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동물을 제단에 바치는 의식이 점차 약화되었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이 예배의 강조점이 되었다. 또한 평신도들도 예배 활동에 직접 동참하게 되었고, 성전의 제사 대신 새벽, 아침, 정오로 드리는 기도가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정까지도 예배 드리는 성소로 바뀌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말씀 중심의 예배”는 오늘의 개혁 교회가 갖는 예배의 전승 근원이 되었다.
2. 신약시대
예수께서는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는 예배의 단절자가 아니라 완성자로 오셨다.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통해 예배 중심의 종교성과 실천 중심의 윤리성을 계속 가르쳤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성례전이 제정되었다. 세례와 성만찬을 지칭하는 성례전은 구약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의미와 내용을 지닌 예배 의식이었다.
사도시대에는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와 활동이 이루어졌다. 또한 회당 중심의 예배와 활동도 뚜렷이 발견된다. 당시의 예배는 구속주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행위로서의 예배보다는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흔히 병행되는 비예전적 형태를 지속해 나가고 있었다. 초대교회는 예배의 내용이나 형태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예배의 내용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었으며, 모든 핵심적 순서도 말씀과 성례에 집중되었다.
중세에 이르러는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성도들의 수용을 위해 대형화 된 교회 건물이 건축되었으며, 예배의 집전을 위하여 성직자의 위치와 권위가 점차 확장되어 갔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예전에 대해 크게 세 부류의 개혁 운동이 있었는데, 루터를 중심한 개혁운동은 단순히 라틴어 미사에서 독일어 사용과 함께 독일어 찬송을 부르는 의식의 변화를 원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쯔빙글리, 칼빈, 낙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개혁운동은 좀 더 급진적인 것으로서 예전에 대해 대폭적인 수정을 가하고 있다. 이보다 더욱 급진적인 것으로 재침례파를 비롯한 퀘이커교도들의 모임 같은 자유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 개혁 운동이 있다. 이들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거부하고, 회중 중심의 말씀 전파와 그러한 형식의 예배를 강조했다.
종교개혁 이후 1800년대 이후로는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복음주의적 신학의 태동과 함께 탈의식 예배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대교회 시대에 이르러 예배복고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각 교회마다 예배 의식을 돌아보게 되었고, 예배당의 구조와 성직자의 역할, 설교단과 제단의 위치, 성찬상의 설치와 십자가를 단 위에 세우는 등의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성만찬의 집례도 보다 진지하게 되었으며, 그 외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4강 예배 현장의 기본 요건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로날드 워드에 의하면 성경을 기초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첫째, 하나님은 살아 계시어 인격적으로 존재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절대적 존재이며, 세상의 주관자로서 오늘도 우리의 예배에 임재하신다. 셋째, 예배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은 예배자들의 심성을 다 아시며,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요구하신다. 넷째, 하나님은 예배자를 가까이 부르시며, 그들을 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며, 과거와 현재 속에 예배자들을 위한 계약의 이행을 변함없이 고수하신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만인사제론이 널리 퍼졌지만 오늘의 교회도 사도적 정신과 사명이 확고한 목사에 의해서 예배가 집례되어지고 말씀이 성실히 선포되어야만 더욱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예배의 집례자들은 개인적인 소명과 응답이 있어야 하며, 부름받은 종으로서 자신을 준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영성훈련이 되어야 하며, 인격적인 본도 요구된다. 그 외에도 학문을 위한 노력과 용기, 근면과 건강이 있어야 한다.
예배자들은 예배를 통해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깨닫는 것과 심오한 경지의 실제성, 그리고 진지한 응답을 해야 한다. 성서적으로 살펴보면, 예배자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존재들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또한 예배자는 지적인 이해를 갖추어야 하며, 영적인 세계의 이해와 도움을 필요로 하며, 언제나 자기 결핍을 느껴야 한다.
제5강 예배의 내용과 그 의미들
구약의 예배내용은 먼저 말씀의 예전으로 시편연구가로 유명한 궁켈에 의하면 시편이 예전 중에 읽혀졌다는 것이다. 다음은 교회와 연관지을 수 있는 예배의 내용으로서 유대인들의 삼대 절기를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예배 내용 가운데 희생제사의 내용을 본다. 신약의 예배 내용은 먼저 성경을 읽는 것이었으며, 그 다음은 기도의 순서였다. 그리고 영적인 예배를 강조하는 순서가 있었다. 초대교회는 예배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예배자의 마음을 주께 드렸으며,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읽고 그 말씀을 강해하면서 설교했고, 기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기도와 감사, 간구, 남을 위한 기도, 축도와 주님 재림을 소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멘의 응답을 활용했다. 그리고 예물의 봉헌으로 감사와 헌신을 표하고, 이 예물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쓰여졌다. 또한 죄의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시간, 성만찬과 세례의 시간이 있었다.
동방교회는 350-380년경에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구의 정착을 한 후 예전의 독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헬라 문화의 영향으로 이들은 성전의 구조에서 예전의 순서까지 풍부한 상상력과 시적인 표현의 가미를 이루게 되었다. 자연히 동방 교회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높이게 되었고, 미적장식과 신비의 가시적 추구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말씀의 예전보다는 신비가 담긴 성만찬 예배에 더 큰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서방교회는 오늘의 구교로 로마인들의 실용주의 정신이 예배 속에 적용되어졌다. 이는 교회건축부터 예배의 내용까지 단순화 되는데 이르렀다. 이들은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 예전을 예배의 부동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중세교회를 장악했던 예전은 문제를 갖고 있었는데, 이는 사제의 존재가 너무 신비스럽게 추구되었고, 회중이 예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성만찬의 현장에 놓인 성물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신학은 예배의 현장을 완전히 신비의 자리로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죽은 자의 영혼 구원에까지도 효과를 줄 수 있다는 탈선적 신앙을 불러 일으키게 했으며, 여기에 더해 7성례와 성모 마리아 및 성자들의 숭배 행위는 십계명의 해석을 혼돈시키는 중대한 오류를 낳았다.
제6강 종교 개혁과 예배
종교개혁은 다른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현장이 그 의미를 잃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사가 발생되지 못한데서 이런 결과가 파생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개혁자들은 모두가 참된 교회로의 회복을 위한 신학의 정립과 교회의 구조적 개혁을 소원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배에 대한 견해만은 일치점을 얻지 못했다. 개혁자들의 공통적 쟁점은 성만찬 중심의 미사를 계속하는 것을 반대, 화체설에 대한 거부, 말씀이 부재된 미사에 대한 지적, 예배의 모국어 집례, 하나님과 예배자의 중간 존재로 설정된 사제의 위치 부정 등이었다. 개혁자들은 루터계와 성공회, 쯔빙글리 계열, 재세례파,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도적 입장에 섰던 개혁자 등이 서로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성만찬 논쟁에 있어서는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 이일로 루터와 쯔빙글리 사이의 결별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제7강 개신교 예배의 본질과 내용
오늘의 개신교 내에는 예배 예전의식을 갖추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는 침례교도와 퀘이커 교도, 성도들의 경험적 신앙과 구원의 확신에 모든 교회의 활동과 예배의 형태까지도 근거하기를 원하는 모라비안과 성령운동 계열, 말씀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장로교와 회중교회가 있다.
개신교 예배의 필수적 명제들은 먼저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예배자들이 마음에 확신해야 한다. 둘째, 모든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드려져야 한다. 셋째, 예배의 형태와 내용과 메시지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개신교 예배에 있어서 오르간 전주, 예배의 부름, 기원, 찬양과 경배의 찬송, 고백의 기도, 영광송, 중보의 기도, 말씀 봉독, 성가대의 찬양, 설교 전 기도, 설교, 감사와 응답의 찬송, 봉헌, 축복기도 등은 그 내용과 순서에 있어 개별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예배를 형성하게 된다.
제8강 성례전
성례전은 라틴어의 sacramentum 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sacraments 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터툴리안이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성례전은 모든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편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와 예배자들의 진지한 응답이 나타나는 현장이다. 또한 성례전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성도들의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하는 예전이다. 마지막으로 화육적 관계 형성이 성례전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다짐되어야 한다.
세례는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에 의하여 그의 자녀로 삼으시는 거룩한 인침이며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으로써 새로운 출발”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결정적 사건이며, 자신의 죄를 회개함과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전이다. 또한 이것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탄생을 의미하며, 크리스천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는 의식이다. 세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물로 씻는 의식, 쿰란 공동체의 세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주었던 세례, 세례 요한의 세례에서 그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성만찬은 초대교회부터 예배의 중심적 순서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만찬 사건에서 기원한다. 성만찬은 주님의 만찬, 성체 성사, 성찬, 최후의 만찬, 희생의 봉헌으로도 불리어졌었다. 개혁자들은 화체설을 부정하고, 기념설과 영적임재설을 주장했다.
제9강 설교설교는 개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설교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씀하셨고, 행하셨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우리의 예배 가운데 말씀을 전달하는 존재는 순수한 하나님의 도구이다. 설교는 살아있는 하나님과 그 분이 행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증거 해야 한다. 또한 설교는 선포적인 설교, 교훈적인 설교, 치유적인 설교, 예언적인 설교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제10강 교회력
교회력은 크게 두 가지의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 년을 주님의 구속사에 따라 구분하여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 그 시기와 사고들을 재인식시키는 방법이다. 교회력에는 대강절과,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이 있다. 예전의 빛깔은 보라색은 위엄을, 흰색은 성결을, 붉은색은 보혈을, 초록색은 성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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