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절망이 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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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욥기 3:1, 11~19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4 자기를 위하여 거친 터를 수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못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도 절망에 빠집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투철한 믿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 불행을 만나면 캄캄한 절망의 골짜기를 방황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시카고대학교의 엘리자벳 쿠불러 로스는 '죽음과 죽는 것'이라는 저서에서 갑자기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분석, 추적하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침체), 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욥기서 42장 중에 욥이 쏟아놓은 말들은 20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을 당한 욥의 말을 종합해 보면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한테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 절망입니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충격을 받았는가는 한동안 말문을 닫고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습니다. 8일만에 입을 열자마자 욥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생일을 저주한다는 것은 살고 싶지 않다거나 자살하고 싶은 충동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런 절망은 너무나 깊기 때문에 그 바닥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은 예외 없이 신앙의 사람이기 전에 가냘픈 풀잎과 같은 존재입니다. 얼마든지 절망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종종 보면 믿음 좋은 사람들 가운데 무슨 일을 당해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탕탕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뜰에 걸어둔 호롱불을 보십시오.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불이 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인간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웃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연약함을 이해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분노입니다.
분노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항이요, 갈등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일수록, 욥처럼 의롭게 산 사람일수록 분노는 더욱 거셉니다. 욥은 왜 자기가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니 더 억울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당한 끔찍한 일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일치시켜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해답도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요, 의로운 자의 보호자시요, 거짓이나 변덕이 없는 신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보니 그런 하나님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속은 듯한 감정을 삭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고통을 당하는 신자들의 가슴속에 욥의 분노가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셋째는 영적침체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불안에서 밀려오는 공포,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이런 감정들이 합병증을 일으키는 증세가 바로 영적 침체입니다. 마음은 가라앉고 기도할 의욕은 나지 않고 자기처럼 불쌍하고 불행하고 무가치한 자가 없다는 자학증세가 고개를 치켜듭니다. 그러다가 불면증, 식욕상실, 절제가 안 되는 울음, 자살충동 등을 느끼게 됩니다. 영적 침체는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 가운데서 가장 지독하다고 합니다. 역경이 오래 지속되면 믿음과 상관없이 이런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욥이 고난 중에 겪었던 정신적인 갈등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극복한 욥의 발자취를 살펴보면서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욥은 믿음의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절망을 해도 그는 믿음에 밧줄에 매달려 절망했습니다.(욥7:16~18) 절망하면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철저히 간섭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기서가 고난의 성경이 아니라 믿음의 성경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욥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16, 17장에서 소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여 19장에 가서는 환하게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5~26) 본래 구속자란 ‘가족의 권리 이행자, 살해당한 가족의 원수를 갚는 자’라는 뜻입니다. 억울함을 풀어 주실 자, 하나님이 자기의 억울함을 변호해 주실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세상에서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어도 저 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답을 해 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욕하고 멸시를 해도 저 나라에 가면 하나님은 나를 가슴에 안아주시리라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고통을 당해도 믿음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믿음이 그의 사활(死活)을 좌우하는 중대사(重大事)이기 때문에 믿음을 잃지 않도록 특별히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슬픔을 못 이겨 절망하고 분노하고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외기러기처럼 울부짖는 캄캄한 밤을 헤맬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소망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됩니다. 고통 앞에 무릎 꿇는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우리를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이웃이, 친구가 고통 앞에 무릎 꿇는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4 자기를 위하여 거친 터를 수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못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도 절망에 빠집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투철한 믿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 불행을 만나면 캄캄한 절망의 골짜기를 방황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시카고대학교의 엘리자벳 쿠불러 로스는 '죽음과 죽는 것'이라는 저서에서 갑자기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분석, 추적하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침체), 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욥기서 42장 중에 욥이 쏟아놓은 말들은 20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을 당한 욥의 말을 종합해 보면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한테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 절망입니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충격을 받았는가는 한동안 말문을 닫고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습니다. 8일만에 입을 열자마자 욥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생일을 저주한다는 것은 살고 싶지 않다거나 자살하고 싶은 충동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런 절망은 너무나 깊기 때문에 그 바닥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은 예외 없이 신앙의 사람이기 전에 가냘픈 풀잎과 같은 존재입니다. 얼마든지 절망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종종 보면 믿음 좋은 사람들 가운데 무슨 일을 당해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탕탕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뜰에 걸어둔 호롱불을 보십시오.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불이 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인간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웃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연약함을 이해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분노입니다.
분노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항이요, 갈등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일수록, 욥처럼 의롭게 산 사람일수록 분노는 더욱 거셉니다. 욥은 왜 자기가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니 더 억울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당한 끔찍한 일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일치시켜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해답도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요, 의로운 자의 보호자시요, 거짓이나 변덕이 없는 신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보니 그런 하나님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속은 듯한 감정을 삭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고통을 당하는 신자들의 가슴속에 욥의 분노가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셋째는 영적침체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불안에서 밀려오는 공포,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이런 감정들이 합병증을 일으키는 증세가 바로 영적 침체입니다. 마음은 가라앉고 기도할 의욕은 나지 않고 자기처럼 불쌍하고 불행하고 무가치한 자가 없다는 자학증세가 고개를 치켜듭니다. 그러다가 불면증, 식욕상실, 절제가 안 되는 울음, 자살충동 등을 느끼게 됩니다. 영적 침체는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 가운데서 가장 지독하다고 합니다. 역경이 오래 지속되면 믿음과 상관없이 이런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욥이 고난 중에 겪었던 정신적인 갈등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극복한 욥의 발자취를 살펴보면서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욥은 믿음의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절망을 해도 그는 믿음에 밧줄에 매달려 절망했습니다.(욥7:16~18) 절망하면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철저히 간섭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기서가 고난의 성경이 아니라 믿음의 성경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욥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16, 17장에서 소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여 19장에 가서는 환하게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5~26) 본래 구속자란 ‘가족의 권리 이행자, 살해당한 가족의 원수를 갚는 자’라는 뜻입니다. 억울함을 풀어 주실 자, 하나님이 자기의 억울함을 변호해 주실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세상에서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어도 저 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답을 해 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욕하고 멸시를 해도 저 나라에 가면 하나님은 나를 가슴에 안아주시리라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고통을 당해도 믿음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믿음이 그의 사활(死活)을 좌우하는 중대사(重大事)이기 때문에 믿음을 잃지 않도록 특별히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슬픔을 못 이겨 절망하고 분노하고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외기러기처럼 울부짖는 캄캄한 밤을 헤맬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소망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됩니다. 고통 앞에 무릎 꿇는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우리를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이웃이, 친구가 고통 앞에 무릎 꿇는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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